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은 사사기 6장 11절부터 24절까지, 하나님께서 연약한 기드온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왕정이 수립되기 전까지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사사기 21장 25절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시대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무질서한 시대였습니다.
사사기 전체의 구조는 반복되는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이 범죄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통해 징계하십니다. 셋째, 이스라엘이 부르짖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워 구원하십니다. 다섯째, 땅이 평안을 누립니다. 그러나 곧 이스라엘은 다시 범죄하고 이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본문의 배경
사사기 6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칠 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을 통해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미디안의 압제는 매우 혹독했습니다. 2-6절을 보면 미디안 사람들과 아말렉 사람들, 그리고 동방 사람들이 메뚜기떼같이 몰려와서 이스라엘의 농작물을 약탈하고 양과 소와 나귀를 빼앗아갔습니다. 그들은 너무 많아서 그 수를 셀 수 없었고, 그들과 그들의 낙타도 무수하여 그 땅을 황폐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심히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을 두려워하여 산속 굴과 동굴과 산성에 거처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땅에서 피난민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곡식을 심으면 미디안 사람들이 와서 약탈해 갔으므로,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무력하고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6절 하반절은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고 기록합니다. 드디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7-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의 죄를 깨우치셨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상기시키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을 주셨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다고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11절부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사사를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은 놀랍게도 가장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기드온이었습니다.
본문 상세 설명

1. 두려움 가운데 있는 기드온 (11절)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이 구절은 기드온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왔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구약에서 하나님 자신의 나타나심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2절에서 기드온이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라고 두려워하며 말한 것을 보면, 이것은 단순한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현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보통 곡식 타작은 높은 언덕이나 평평한 마당에서 바람을 이용하여 합니다. 바람이 불어 겨는 날아가고 알곡만 남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서, 즉 낮고 좁은 장소에서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명확히 말합니다.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기드온은 두려워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면 자신이 어렵게 수확한 밀을 모두 빼앗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숨어서, 은밀하게,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 당시 이스라엘의 실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 땅에서 원수를 두려워하며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자유롭게 농사를 짓지 못하고, 수확한 곡식조차 숨겨야 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타락한 삶의 결과였습니다. 죄는 항상 우리를 두려움 가운데로 몰아넣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죄가 들어오자 두려움이 왔고, 두려움이 그들을 숨게 만들었습니다. 기드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미디안의 압제가 왔고, 그 압제 때문에 기드온은 두려움 가운데 숨어서 살아야 했습니다.
2.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드온 (12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이 말씀은 정말 놀랍습니다. 포도주 틀에 숨어서 두려움에 떨며 타작하고 있는 사람에게 "큰 용사여"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큰 용사'는 히브리어로 '기보르 하일'인데, 이것은 '강한 전사', '용맹한 장수'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기드온은 용사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겁에 질려 숨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할 능력도 없고, 미디안과 싸울 용기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 안에 숨겨진 잠재력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될 기드온의 미래를 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실 때 그의 현재 상태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보십니다.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처음 베드로를 부르실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게바라 칭함을 받으리라" 게바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베드로는 반석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말씀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기드온을 큰 용사로 만들 것입니다. 기드온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그를 강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를 능력 있게 만듭니다.

3. 기드온의 의심과 질문 (13절)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기드온의 대답에는 의심과 좌절, 그리고 원망이 섞여 있습니다. 그는 세 가지 질문을 합니다. 첫째,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기드온은 하나님의 임재와 현재의 고난을 양립시킬 수 없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정말 함께 계시다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둘째,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기드온은 과거의 하나님과 현재의 하나님을 대조합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이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내리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아무 이적도 없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과거처럼 역사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이것은 결론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의 고난을 하나님의 버리심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기드온의 이 반응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겪을 때 비슷한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셨는데 왜 지금은 침묵하시는가?"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그러나 기드온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손에 넘겨진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셔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6장 1절이 분명히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고난의 원인은 하나님의 버리심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배반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의 질문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심과 연약함을 아시지만, 여전히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4. 하나님의 부르심과 위임 (14절)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네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하나님은 기드온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대신 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관심과 선택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주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눈길이 기드온에게 머물렀습니다. 이것은 큰 은혜입니다.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선택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이 네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이 명령은 놀랍습니다. "이 네 힘으로" 기드온에게 무슨 힘이 있습니까? 그는 포도주 틀에 숨어 있는 두려운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군대도 없고, 무기도 없고, 전략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네 힘으로 가서 구원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네 힘"은 기드온 자신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주실 힘,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기드온 안에 생길 힘을 의미합니다. 12절에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것이 곧 기드온의 힘입니다.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이 말씀은 기드온에게 권위와 확신을 줍니다. 이것은 기드온 자신의 계획이나 결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실패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내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4장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납니다. 모세는 "나는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모세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기드온도 마찬가지입니다.
5. 기드온의 열등감과 두려움 (15절)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기드온은 두 가지 이유로 자신이 부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그의 가문이 약했습니다.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므낫세는 요셉의 아들로, 이스라엘 12지파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므낫세 지파 내에서도 기드온의 집안은 가장 약하고 보잘것없는 가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영향력도 없고, 재산도 없고, 명성도 없었습니다.
둘째, 그 자신이 미약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기드온은 자기 집안에서도 가장 어리고 보잘것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막내였거나 형들에 비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기드온의 이 고백은 그의 깊은 열등감을 드러냅니다. 그는 자신을 "극히 약한 집안의 가장 작은 자"로 정의했습니다. 이것이 기드온의 자아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사무엘상 16장에서 다윗을 선택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보러 왔을 때, 이새는 다윗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형들에 비해 너무 어리고 보잘것없어서 후보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2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약한 자를 선택하셔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6. 하나님의 약속과 확신 (16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기드온의 열등감과 두려움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주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이것이 핵심입니다. 문제는 기드온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기드온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승리할 것입니다. '반드시'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성입니다.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이것은 놀라운 약속입니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은 메뚜기떼같이 무수히 많았습니다(5절). 그들과 그들의 낙타가 심히 많아 그 수를 셀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이 그 많은 적을 "한 사람을 치듯" 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완전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한 사람을 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수많은 적군이 마치 한 사람처럼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실제로 사사기 7-8장을 보면 기드온이 삼백 명의 용사로 미디안의 대군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승리였습니다.
로마서 8장 31절은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는 어떤 대적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7. 표징을 구하는 기드온 (17-21절)
기드온은 여전히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표징을 구합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17절)
기드온은 겸손하게 표징을 구합니다. 그는 자신의 의심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직하게 "나는 확신이 없습니다. 표징을 보여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정직함을 기뻐하십니다.
기드온은 예물을 준비하여 돌아왔습니다.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그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19절) 가루 한 에바는 약 22리터로, 상당히 많은 양입니다. 기드온은 정성을 다해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그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표징을 보이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21절)
불이 반석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남이었습니다. 레위기 9장 24절을 보면 아론이 처음 제사장으로 봉헌될 때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서 제물을 살랐습니다. 열왕기상 18장 38절을 보면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번제물을 살랐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불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나타내는 표징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이 표징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22절) 이제 기드온은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자기와 말씀하신 분이 정말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확신했습니다.
8. 두려움과 평안 (22-24절)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22절) 기드온은 두려워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는다고 믿었습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을 안심시키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3절) '안심하라'는 히브리어 '샬롬'입니다. 이것은 '평안', '평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기드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고 불렀습니다.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24절) '여호와 살롬'은 '여호와는 평강이시다' 또는 '여호와께서 평강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기드온의 신앙고백입니다. 두려움 가운데 있던 기드온이 이제 평안을 경험했습니다. 미디안을 두려워하던 기드온이 이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평안이 기드온으로 하여금 미디안과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환경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미디안의 위협이 여전히 있었지만, 기드온은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렸습니다.
핵심 메시지
이 본문의 핵심 메시지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선택하셔서 사용하십니다.
기드온은 객관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약한 가문의 가장 작은 자였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포도주 틀에 숨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군사 경험도, 리더십도, 자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런 기드온을 선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통해 일하심으로써 영광을 독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연약하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보잘것없다고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는 배경이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세 번이나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12절에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16절에서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그리고 23절에서 평안을 주심으로 함께 하심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것을 바꿉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겁쟁이가 용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약한 자가 강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불가능이 가능이 됩니다.
출애굽기 33장 14-15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모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가지 않으신다면 약속의 땅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원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의 고백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셋째, 하나님은 우리가 될 모습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현재의 기드온이 아니라 미래의 기드온을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될 기드온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현재의 모습으로만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숨겨진 잠재력을 보십니다.
로마서 4장 17절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입니다.
우리도 이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볼 때, 우리의 현재 모습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미래를 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약점과 실패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이루실 가능성을 봐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 본문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귀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드온은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그는 자신을 포장하거나 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강한 척, 능력 있는 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은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무능력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기드온은 의심도 많고 두려움도 많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그는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표징을 보여주십시오"라고 요청했고, 하나님께서 표징을 보여주시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사명을 주십니다.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족하다고, 우리가 연약하다고 거절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 6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물으실 때,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
기드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표징을 구했고,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심으로 함께 하심을 확증하셨습니다. 이 확신이 기드온으로 하여금 미디안과 싸울 수 있게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사역에서, 우리의 결정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주님, 오늘 저와 함께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주님, 이 일에 함께 하십시오"라고 구해야 합니다.
시편 16편 8절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사는 삶, 이것이 승리하는 삶의 비결입니다.
넷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기드온은 처음에 미디안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포도주 틀에 숨어서 타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후 그의 두려움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을 가졌지만(22절), 더 이상 미디안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원수가 우리를 마비시키려고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환경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문제의 크기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크심을 봐야 합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다섯째, 하나님의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만난 후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고 불렀습니다. 미디안의 위협이 여전히 있었지만, 기드온은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렸습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약속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환경이 어렵고, 문제가 산적해 있어도,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릅니다. 이 평안은 환경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이 평안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평안입니다.
마치는 말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연약한 기드온을 부르시는 장면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기드온은 약한 가문의 가장 작은 자였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포도주 틀에 숨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기드온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우리도 연약합니다. 우리도 부족합니다. 우리도 때로는 두려움에 떨며 숨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런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라고 부르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나의 일꾼이여", "나의 증인이여"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 가능성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아십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라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기드온처럼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핑계 삼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담대히 나아가야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약한 데서 온전하여집니다. 주님의 평안을 누리십시오. '여호와 살롬', 여호와는 우리의 평강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를 통해 이루실 놀라운 일들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이름을 높이시고,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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